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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오브맨, 디스토피아걸작 미래를 예견하다

by 민쿡스 2021.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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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오브 맨, 디스토피아 걸작 미래를 예견하다

<Source: IMDb>

2027년 영국, 최연소 아기의 죽음이 온 세상에 비통을 가져오다

인류 멸망의 위기가 코 앞으로 다가온 2027년. 좀비로 인한 지구 멸망도, 외계인의 침략도 아닌 알 수 없는 질병 확산의 이유로 여성들은 불임을 마주하게 된다. (불임의 원인은 셀 수 없이 다양하고 많지만,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불임의 주된 의미는 먼 미래의 절망적인 사회를 그리고자 하는 뜻에 있는 것으로 유추된다.) 세상에서 가장 어린 나이를 가진, 인류의 희망이자 종말의 마지막 끈이었던 18세의 아이가 사망에 이르게 되면서 온 세상 사람들은 절망과 슬픔에 빠진다. 문명화된 사회로 자리 잡은2027년의 영국. 이민자들이 넘치다 못해 들끓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정부에서 이민자들을 대하는 방식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인 판. 이러한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주인공 테오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도중 한 테러리스트 그룹에 끌려가게 된다. 그곳에서 마주한 가까운 지인은 테오에게 이민자 한 명을 무사히 해안가로 데려가 달라는 부탁을 받는데....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은 2006년 개봉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로, 이후 <그래비티>와 2018년 개봉 영화 <로마>와 밀접하게 연관 지어 있는 "생명"과 "인류애" (그리고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가 함축된) 수작 영화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를 인상 깊게 본 대부분의 관객들은, 감독 특유가 가지고 있는 "영화 그 자체"를 예찬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작은 불안 불안하나, 결국 그 끝에서 희망의 끈을 잡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때 희망을 품고 열정적으로 도전했던 사람이 위기를 맞게 되면서 그 위기를 극복할 목표를 찾는 일,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Source: IMDb>

2027년, 여성 불임 사회

 

2019년, 여성 비혼 주의 사회

2019년. 가부장제 및 부족한 육아제도, 출산 후 경력 단절, 남아선호 사상 등의 이유로 여성이 "불임"을 마주하게 되는 현실이 아닌, "비혼/비출산"을 걷는 세대가 왔다. 대한민국의 출산율을 보면 최근 10년간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도 한데, 향후 10년간을 예측해 보았을 때 영화 속 내용이 그다지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여성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사회적 경력이 절단되는 것은 보편화된 모습인데, 사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든 이런 케이스는 흔하다. (미국에서는 육아에 지친 여성들이 사회로 복귀하는 고민을 가지고 남편과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을 스토리의 한 토막으로 쓰기도 한다) 결혼 후 가사분담이라고는 맞벌이뿐, 아등바등 대출받아 집값 내고 아이들 교육비를 벌고, 자식이 다 자랄 때까지 평균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 자신"이 아닌 "엄마"로 살아오면서 자신의 삶을 희생 해오지만 사회에서는 "맘충"이란 꼬리표가 자연스럽게 붙어 다닌다.

여성이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경제적, 사회적 부담 대신 개인의 행복을 선택하는 이유.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주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이미 2000년도에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으며, 머지않은 2026년에는 초고령화 사회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칠드런 오브 맨>에 중심을 잡고 있는 소재는 생명도, 불임도, 미래 배경도 아닌 "여성"이다. 영화 속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 이끌어가는 힘을 강력하게 보여준다는 이야기이다. 오로지 생명을 잉태할 권리와 선택은 여성에게만 있다는 것을

<Source: IMDb>

디테일한 미래 사회의 묘사, 디스토피아를 구현하는 미장센은 이렇게

<칠드런 오브 맨>이 동시대에 개봉한 다른 디스토피아 영화보다 더 인상에 남는 이유가 무엇일까. 2004년 개봉 영화 <아이, 로봇>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로봇이 세상을 지배하는) 미래 배경과는 달리, 큰 특수효과나 CG 없이도 이민자와 난민의 모습을 연출하여 디스 토피적 배경을 그려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영화에서 보이는 미래 사회의 모습이 비록 먼 미래일지라도, 현재와 유사한 모습을 나타내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한 바가 있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미래의 모습인 하늘을 나는 자동차나 중국어, 일본어 간판이 도배된 거리의 모습 대신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보다 친숙한 모습이 참 많다. 1992년 출간된 P.D. James작가의 원작 소설 <칠드런 오브 맨>에서는 이러한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이 세 부화되어있다. 소설에서는 소위 "오메가"집단으로 불리는 집단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미래에 대한 모습이 묘사가 되어있지만, 영화에서는 과감한 미래 모습을 덜고 불필요한 장면들 대신 이야기의 흐름에 집중한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카메라 기법과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연출만 있으면 모든 게 마법처럼 재구현 되는 느낌이다. 미래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다. 현재의 모습에서 조금만 고치고 바꾸다 보면 먼 미래도 가깝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echoandboom.wordpress.com>

<Source: IMDb>

영화 초반부에는 한 계층과 또 다른 계층이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는 장면을 찾아낼 수 있는데, 그 장면이 바로 이 초토화된 사회에서도 누릴 건 누리고 살아간다는 주인공 테오의 사촌 가족의 모습이다. 영화의 전반 장면과 후반 장면의 대조, 이것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한 곳에서는 호화스러운 음식과 부를 상징하는 여러 미술작품과 함께 파티가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자신의 권리와 존엄성을 위해 와인잔이 아닌 총을 들고 싸우는 이주민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장면에는 주인공 테오의 모습과 함께 피카소의 작품 Guernica (게르니카)가 뒷 배경으로 깔린다. 여기서 "게르니카"란 스페인의 소도시를 뜻한다. 더 나아가, 세계 2차 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무책임한 폭격으로 인해 아이, 엄마 할 것 없이 죄 없는 민간인들이 대량 학살된, 전쟁의 참혹함과 결과에 대해서 그린 그림이다. 영화 속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우연의 일치였을까, 연출의 한 장면이었을까. 테오의 사촌이 우아하게 스테이크 한 조각을 썰고 맛있는 와인을 들이켜는 와중에서도, 바깥세상은 핵폭발로 인해 초토화된 아프리카의 뉴스 소식과 이민자들의 불법 무기소지로 인한 공습 등 인간의 "생명"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가 끊이질 않고 들려왔다.

특히나 이 장면은 지구가 당장 멸망해 불타오르더라도 자본주의가 낳은 물질주의적 사고는 버리지 못하고 있는 특권 계층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지구가 멸망하는 태세에 와인 한잔을 시음하며 미술 작품을 쓸어 모으는 테오의 사촌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미래 배경과 현실과 맞닿아있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지 위화감을 느낄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바깥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참수당하고, 전쟁의 희생자가 되어 뿌연 하늘의 연기처럼 떠다니는데, 피카소 게르니카 작품이 테오의 사촌과 같은 고위층 사람들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영화 속 상황과 다소 언발란스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진 않은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Source: IMDb>

카메라 기법의 꽃, 롱테이크

사실감을 전달해주는 영화의 비결에는 롱테이크 카메라 기법이 있다. 롱테이크 기법이 액션 영화에 등장하면 몰입감은 물론 컷이 많은 난잡한 영화보다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만들어주는 효과를 나타낸다. 이 롱테이크 기법은 알폰소 쿠아론 영화 <칠드런 오브 맨>, <그래비티>, <로마>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래비티>에서는 우주미아가 된 주인공의 심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체험"형식으로 사용되었으며, 잔잔한 드라마 장르 영화 <로마>에서는 먹먹하면서도 긴장감이 도는 기법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에서 사용된 몇몇의 롱테이크 씬에서는 마치 관객의 눈이 카메라가 되어 주인공 테오와 함께 여정을 떠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불필요한 대사나 끊기는 컷 없이 배우들의 감정 상태를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감독마다 롱테이크 기법을 활용하는 예는 정말 천차만별이지만, 특히나 쿠아론 감독의 촬영기법은 많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영화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었다. ( 최근 2019년 91회 아카데미 (오스카) 시상식에서 로마를 통해 감독상, 촬영상을 받기도 했다) 이 롱테이크 기법은 액션 영화의 교과서 007 시리즈 중 인상 깊은 오프닝 시퀀스로 알려진 <007 스펙터>와 한국영화 역사상 길이 남을 롱테이크 씬 영화 <올드보이>, 단 두 번의 롱테이크 컷으로 영화를 완성한 <버드맨> 등 여러 장르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Source: IMDb>

그래서,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동물은 자연을 해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자연을 해칠 뿐이다. 더 나아가 인간은 먹이사슬의 최 상위권에 있으니, 자연은 물론 동/식물, 같은 인간까지 해칠 수 있는 "권력"을 부여받았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인지한다. 영화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생명의 존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선물이자 행운이지만, 결국엔 영화에서 나타내고 있는 비극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도 결국은 인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민자들을 가둬놓은 철창 안에서도, 철창으로부터 쫓겨난, 총을 들고 분노를 표하는 이민자들도 어째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이처럼 경이롭게 표현이 되는가 싶기도 하다. 우리 사회와 가까운 듯하면서도, 조금 먼..

이상 내가 본 영화 칠드런 오브 맨입니다.